돌아가신 외할머니는 평양 출신이시고, 일제 시대때는 서울에 있는 일본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셨어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당진 출신이시고, 일본 대학에서 유학하신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대학 교수를 하고싶으셨는데, 큰형님이 공산주의자(빨갱이)여서 전쟁때 사람들한테 맞아 죽은 기록이 있어서 대학에서 가르치실 수 없으셨대요.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시고, 교장 선생님까지 하시고 퇴직하셨어요. 어릴적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집에 가서 앨범을 보면 외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일본 대학 교복입으시고 찍은 사진들이 있고, 외할머니는 젊은 시절 기모노를 입으시고 찍은 사진, 미니스커트를 입고 골프치시는 사진, 그리고 외활아버지랑 외할머니랑 일본에서 서양식 결혼식 하신 사진들이 있었어요. 어릴때 앨범에서 봤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은 저에게는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외할머니는 일제 시대때 교육을 많이 받으시고, 일본인 회사에 다니셔서 예의와 정직성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멋도 많이 부리시고, 잘 사셨대요. 이북 출신이셔서 생활력이 강하고, 정말 열심히 사셨는데, 전쟁 후에는 주위 한국 사람들한테 사기를 여러번 당하셔서 고생을 좀 하셨대요. 그래도 외할머니는 부지런히 일하시면서 사셔서 저희 엄마와 이모들을 다 음악 공부를 시키시고,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보내셨어요. 그런데 외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북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이북 사람들은 독하다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우리 외할머니도 좀 무섭고, 자존심이 굉장히 세시고, 독하신 면이 있으셨어요. 그리고 외할머니는 일본사람들이 예의바르고 정직하다고 좋게 말씀하셨어요. 일본 병원에 다니실 때 일본인 의사와 직원들이 외할머니한테 잘해주셨대요. 예전에 외국에서 살 때 International 모임에 일본 학생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외국에서 한국인들의 반일 시위가 있었는데, International 모임의 한국인 리더도 그 시위에 참석했었대요. 그 이야기를 모임에서 일본 여학생이 언급하면서(섭섭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일본인으로써 일본을 대표해서 사과한다고 말했어요. 그 일본인 여학생의 눈물 흘리던 모습이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그리고 일본에 여행갔을때 한 번은 길을 잃어서 헤매고 있는데, 어느 일본 중년의 아저씨가 눈치를 챘는지 저한테 영어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셨고, 일본 식당에 가서는 일본어를 몰라서 일부러 말을 못하는 장애인처럼 손짓으로만 음식 메뉴를 보면서 주문하니까 일본인 직원이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던지.. 등등.. 저는 일본이 좋았어요. 그리고 외국에서 알고 지냈던 일본인 친구는 몇년 전에 필리핀에 와서 필리핀 가난한 마을도 방문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일본을 좋아하는데… 그러면 저도 친일파가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