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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식민지 시대


16 세기 스페인인들이 오기 이전부터 파시그 강 유역에서 살고 있었으며, 마닐라에 접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현대 마닐라 지역은 말레이족의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고, 중국인 등이 활발하게 내항하여 교역을 하고 있었다. 동양의 스페인의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초대 총독으로 필리핀을 방문한 미구엘 로페즈 드 레가스피는 마닐라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하고, 이곳을 점령하여 기지화하려고 했다. 레가스피는 1570년에 선발대를 파견하여 마닐라를 점령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1571년에 직접 마닐라를 점령했다. 레가스피가 점령한 날인 5월 19일은 성 포텐시아나 성인의 축일이었기 때문에, 포텐시아나를 필리핀의 수호 성인으로 삼았다. 레가스피가 세운 최초의 마닐라 시는 샌 안토니오, 샌 프란 카를로스, 산 가브리엘, 산 루이스 네 지역으로 구성되었으며, 관청과 성당과 중앙광장,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이나 군사 시설, 숙소 등이 만들어 졌다. 이것이 현재의 인트라무로스 지역이다. 중국인들은 스페인인의 점령으로 교역에 지장을 받았기 때문에 그 제거를 노렸다. 초기 마닐라는 중국 남부 지역의 해적 두목이었다고 추측되는 림 아혼의 습격을 받고, 화재 등에 의해서도 파괴되는 경우가 많았다. 16 세기 말에 이 지역을 방문한 예수회 안토니오 세데뇨는 건축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지휘에 따라 마닐라의 재건과 요새화를 진행시켜 "인트라무로스"라는 마닐라의 성벽 지역이 정비 되었다. 인트라무로스 내부에는 일반 건축물과 함께 마닐라 대성당, 산토도밍고 교회 등 많은 빼어난 교회가 건설되었지만,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되었다. 건설 당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건축물인 산 아우구스틴 교회는 《필리핀 바로크 양식 교회군》으로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여전히 아시아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닐라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인트라무로스 밖에 중국인 거리를 조상하고 살면서 스페인인들과 거래를 했다. 스페인인과 중국인은 때로는 적대하면서, 공존하는 관계를 지속했다. 이렇게 마닐라는 필리핀, 스페인, 중국인의 섞인 다민족 도시라는 독특한 특성을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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